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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궁금하다] 청진기

[이것이 궁금하다] 청진기  미세음까지 '쏙쏙' 질병 족집게

[부산일보] 2004/06/07 20면

 

 

장음(腸音)이 약간 높아져 있군요. 장염인 것 같은데…. 입원해서 검사를 해 봅시다. 드물지만 장염이 아니라 증세가 유사한 맹장염일 수도 있으니까요.' 인제대 부산백병원 소아과 송민섭 교수 진료실. 초등학교 5학년 이성백군이 어머니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선다. 인제대 부산백병원 소아과 송민섭 교수가 청진기를 이용해 이성백군을 진찰하고 있다.

 

 

 

 

 

 

 

 

 

 

 

 

이군은 1주일째 복통을 앓고 있다. 간혹 토했고,하루 3번 정도 설사를 했다. '자,진찰을 해 볼까?' 송 교수는 마주 앉은 이 군의 윗옷을 올리더니 청진기를 가슴에 들이댄다. 앞쪽에 서너군데,뒤쪽에 두어군데를 짚어보더니 장염인 것 같다고 말한다. 송 교수는 다시 이군을 진찰용 침대에 눕히더니 손으로 이곳저곳을 눌러본 다음 2~3일 정도 입원할 것을 권한다. 장염은 맹장염과 증세가 비슷하기 때문에 가슴과 배의 사진을 찍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송 교수가 청진기를 사용한 목적은 무엇이고,어떤 근거로 장염 판정을 내린 것일까?

진찰은 흔히 시진(의사가 환자의 표정과 피부색 등을 눈으로 관찰하는 것),문진(병력을 물어보는 것),타진(두드려 보는 것),촉진(만져보는 것) 그리고 청진(들어보는 것)으로 분류된다. 청진은 문진을 한 다음 환자의 상태를 귀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때 청진기가 동원된다.

청진기는 심장의 박동이 만들어 내는 심음(心音),호흡음을 비롯한 장음(腸音),혈관음 등을 청취해 정상 여부를 판별할 때 쓰이는 도구이다. 의사들은 몸 앞쪽의 심장과 양쪽 폐 위와 아래,몸 뒤쪽의 양쪽 폐 위와 아래 등에 청진기를 들이댄다. 배가 아프다고 할 때는 배에,혈압을 측정할 때는 팔뚝의 동맥에 들이대기도 한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청진기는 떨림판(큰 집음판),종(작은 집음판),밸브,연결관,귀꽂이로 구성돼 있다. 떨림판은 고음을 듣는 데,종은 저음을 듣는 데 사용된다. 많이 쓰이는 것은 떨림판이다. 종은 심잡음(심장이 혈액을 짜내는 펌프 구실을 할 때나 혈액이 심장에 채워질 때 나는 소리)이 저음으로 들릴 때만 주로 사용된다.

송 교수는 청진하는 동안 몇 차례 숨을 크게 들이쉬라고 말했다. 이는 숨을 들이쉴 때 공기가 기도를 통해서 폐로 들어가는 소리를 들어보기 위한 것이다. 염증이나 질병 탓에 기관지가 좁아져 있다면 그 소리는 비정상적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장의 경우는 어떤가. 음식물은 소화기관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옮아 다닌다. 이는 연동이라고 하는 장의 움직임 때문이다. 연동운동이 정상인 배에 청진기를 대고 소리를 들어보면 여러 가지 소리가 들린다. 장염이나 장폐색 같은 병이 있으면 장음이 항진되거나 감소될 수 있다. 이군은 항진돼 있는 경우다. 그러나 일반인들로서는 그 차이를 가려내기가 매우 어렵다.

심잡음의 경우에는 보다 전문적인 판별 능력이 필요하다. 송 교수는 '병·의원에서 심잡음이 들린다고 하면 부모들은 놀라게 마련인데 운동 후나 열이 날 때도 심잡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유전자지도가 완성돼 나오는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청진기를 동원한 진찰기법은 일견 '원시적'으로 보이기까지 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식은 앞으로도 기본적인 진단도구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지킬 듯하다.

 

이광우기자

 

 

청진기 유래와 발전 종이로 만든 원통이 최초

 

청진은 히포크라테스가 환자의 몸에 자기의 귀를 대 체내의 음을 직접 들어본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청진기가 나온 것은 훨씬 이후의 일이다. 프랑스의 내과 의사 라에네크는 1816년 어느 날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한 아이가 판자를 못으로 박박 긁으면 반대편에 있는 아이가 판자에 귀를 대고 듣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라에네크는 자신도 판자에 귀를 대고 못을 긁어 보았다. 소리가 아주 잘 들렸다. 그는 환자의 몸에 귀를 대지 않고도 몸속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뚱뚱한 여성이 심장이 안좋다며 찾아오자 종이를 원통형으로 만 뒤 한쪽 끝을 환자의 심장부위에 대고 다른 한쪽 끝에는 그의 귀를 갖다 대었다. 심장의 박동음이 직접 귀를 댔을 때보다 더 명확하게 들렸다. 그는 이내 깔때기 모양의 청진 기기를 고안했다. 그것이 최초의 청진기이다. 그는 이 발명품에 'stethoscope'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그리스어로 '가슴을 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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